대구 간송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대구 미술관을 다니면서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건물이 간송 미술관이었더군요. 대구 간송 미술관은 2024년 9월 새롭게 오픈을 하고 간송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간송 미술관을 얘기하자면 간송 전형필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906년 서울에서 태어난 전형필의 집안은 지금의 서울 종로 4가 중심의 종로 일대의 상권을 가지고 있었던 대부호였습니다. 당시의 관례에 따라 그는 자식이 없는 작은아버지의 양자로 입적되기도 했습니다. 1926년 휘문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교 법학부에 진학했습니다. 1919년에 양부와 맏형이 사망하고, 1929년 친부까지 사망하자 젊은 나이에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아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1930년 학업을 마치고 일본에서 귀국한 후에는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조선의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그는 문화재 수집과 그를 보존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문화재 보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고교 시절 스승이었던 춘곡 고희동 선생과 그의 소개로 알게 된 독립운동가 위창 오세창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고희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민족주의자로 전형필의 미술 교사였습니다. 특히, 오세창의 영향이 컸는데 그는 민족미술의 체계를 정리한 '근역서화징'의 저자이면서 한학의 대가이기도 합니다.
33세 때, 자신의 소장품으로 자신이 매입했던 성북동 소재의 북단장 안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을 세웠습니다. 보화각은 위창 오세창이 지어준 이름으로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1962년 그의 나이 57세로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소장품을 연구 관리하기 위해 보화각은 지인과 유족들에 의해 한국 민족미술연구소와 간송 미술관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전형필의 수집품 중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훈민정음해례본입니다. 훈민정음해례본은 훈민정음을 왜 만들었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것은 원래 경북 안동의 광산 김 씨 문중의 가보로 김 씨 종가의 서고에 보관되어 오던 것으로, 세종이 여진 정벌의 공로를 치하하면서 김 씨 문중에 내린 서책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집안의 사위였던 이용준이 훈민정음해례본을 몰래 빼돌려서 자신이 자택에 보관하던 중 거간을 통해 전형필에게 만 원에 넘겼습니다. 이때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이용준은 해례본의 판매 금액으로 천 원을 제시했는데 문화재의 가치를 제대로 치르던 전형필은 만 원을 주고, 거간에게는 천 원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 사례를 보면 간송 전형필이 어떠한 인물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광복 이후 해례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책의 내용을 알려서 한글의 창제 원리가 밝혀지게 됩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든 원리를 해례본에 담았고, 신하들은 자음과 모음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설명을 담았습니다. 지금과는 조금 다르지만, 초기 한글의 모습 등을 알 수 있는 서적이 바로 훈민정음해례본입니다. 대구 간송 미술관에는 현대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훈민정음해례본 : 소리로 지은 집'이라는 이름으로 2025년 5월 25일까지 전시를 합니다. 이곳을 방문하면 소리로도 훈민정음해례본을 들을 수 있습니다.
대구 간송 미술관을 소개하자면, 1 전시실에서는 서화와 도자를 중심으로 한 간송의 소장품들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회화로는 김홍도, 장승업, 신윤복 등의 그림들을 진품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보던 그림의 진품을 보는 느낌이 놀라웠습니다. 작품들을 보면 잘 모르는 제가 봐도 보관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자로는 청자와 백자로 여러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국보로 지정된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도 전시되어 있어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전시실 3에서는 훈민정음해례본을 위한 공간입니다. 흠집 하나 없이 보관되어 있는 해례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보존되어 있는 형태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전시실 2에서는 김홍도의 작품 '백매'를 전시 중입니다. 지하 1층 전시실 5에서는 '흐름 - The Flow'라는 주제로 이곳에 있는 작품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른, 아이 모두 영상으로 쉽게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어있는 공간입니다. 플라스틱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감상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는데, 나이가 있는 분들에게는 불편한 자리 같았습니다. 특히, 노인을 위한 배려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상설 전시실은 일 년에 세 차례 간송의 소장품을 순차적으로 전시한다고 합니다. 미술관 한편에 수리, 복원실이 있는데 전시용이 아니라 실제로 시간을 정해 사용하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들어갈 수는 없고 유리로 된 칸막이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수리나 복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신기한 경험일 것 같습니다. 오전 열한 시와 오후 두 시, 하루 두 차례 전시해설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소요 시간은 약 30분 정도라고 하네요.
전시실 1의 맞은편에 간송의 방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간송 전형필과 그의 작품들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아트숍이 있습니다. 열쇠고리이나 무선 이어폰 케이스 등 젊은 층을 위한 제품부터 부채, 스탠드, 가방 등 다양한 제품들이 청자와 백자의 색을 입고 판매 중입니다.
전체적으로 건물의 웅장함에 비해 전시 작품 수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기획전시 공간은 준비 중이던데 궁금하기는 하더라고요. 미술관의 입구 들어가기 전 보이는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기둥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한국적이고 자연의 일부가 되는 미술관을 지향하는 설계의 기초에 맞게, 주변의 여백이 있는 조형과 건물이 조화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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