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기억하는 이중섭의 그림은 아마도 교과서에 실린(지금도 실려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림 '소'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린 눈으로 봐도 힘이 있는 선을 느낄 수 있었던 그림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강인한 소의 그림보다는 아이와 가족을 그린 그림이 더 눈에 들어왔었습니다. 그때는 그 그림들이 그냥 일반적인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그렸던 그림이었습니다. 그림만으로도 가족을 그리워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이중섭은 1926년 평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평원군 조운면이라는 곳에서 삼 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학업을 위해 여덟 살 때 평양에 있는 외가로 갑니다. 평양에 있는 공립종로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해인 1930년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합니다. 2학년 때 미술교사로 부임해 온 화가인 임용련으로부터 미술지도를 받습니다. 3학년때는 '전조선남녀학생작품 전람회'에서 입선으로 당선되는 등 학생시절 학생전에서 세 차례 입선 수상을 합니다.
1936년 일본의 도쿄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지만, 출석수와 성적미달로 제적을 당하고 제명까지 당하자 문화학원에 입학합니다. 그곳에서 1939년 입학한, 이중섭의 아내가 된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게 됩니다. 1942년 마사코가 학교를 그만두면서 만나기 어렵게 되자, 이중섭은 엽서를 여러 장 구입해서 글씨 쓰는 곳에 그림으로 가득 채워서 마사코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최열의 '바다 건너 띄운 꿈, 그가 이룩한 또 하나의 예술 이중섭, 편지화'에서는 이를 '엽서화'의 기원이라 칭합니다. 이중섭은 1943년까지 '자유미술가 협회전'에 출품하며 여러 차례 입상도 하지만 태평양전쟁의 영향으로 어머니가 계신 원산으로 돌아옵니다. 1945년에는 야마모토 마사코가 이중섭이 있는 원산으로 와서 둘은 결혼식을 올립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이중섭은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옵니다. 그와 가족들은 부산, 통영, 제주 등으로 옮겨 다니며 생활했지만, 극심한 가난은 1952년 아내 마사코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낼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아내와 두 아들이 일본으로 이주한 후, 1956년 9월, 이중섭이 서울의 적십자병원에서 간염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부산, 대구, 통영 등을 떠돌며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가 사망할 당시, '무연고자'로 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었다고 합니다. 며칠 뒤 문병 온 소설가 김지석에 의 알려져서 화장을 했지만, 묘소를 구하지 못해 봉원사 밥골당에 봉안했다가 사망한 지 73일 만에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고, 이듬해 묻고 남은 뼈 한 줌이 그의 아내 마사코에게 전달되어 야마모토 집안의 묘지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22년 8월 이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열의 '바다 건너 띄운 꿈, 그가 이룩한 또 하나의 예술 이중섭, 편지화'에 따르면 195년 서귀포에서 부산으로 옮긴 후 1953년 통영으로 갈 때까지 은지화를 창안했다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그림 도구를 구입하지 못해서 담뱃갑의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 데서 비롯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한 그는 이 당시 색판선화의 기법을 사용한 작품을 남겼는데, '서귀포 바닷가의 아이들', '달과 아이', '봄의 아동' 등이 그러합니다. 색판을 만든 뒤 긁어내거나 덧칠 또는 덧새기는 기법을 사용한 그림을 색판선화라고 한다고 하네요.
이중섭은 멀리 있는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면서 글씨뿐만 아니라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위의 책에 따르면 이것이 '편지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복숭아와 아이'라는 그림편지를 보면 종이의 윗부분에는 두 아이가 커다란 복숭아를 가지고 놀고 있는 그림을 그리고, 아래에는 아들에게 따뜻한 안부를 묻고 그림에 대한 짤막한 내용을 나타내는 내용이 일본어로 쓰여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중섭의 그림 중 이러한 그림편지나 편지글의 여백에 아이가 그린듯한 순수한 그림들을 좋아합니다. '태성군 나의 착한 아이'나 '나의 착한 태현군 태성군', '태현군', '태성군' 등의 편지 속 그림은 아이 같은 그림이지만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한 불운하고 안타까운 화가 이중섭의 삶을 넘어,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보듬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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