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으로 굽어진 곡면의 유리 너머 유리와 같은 모양으로 굽어진 바가 보입니다. 유리를 등지고 남자가 등을 보이고 앉아있고 남자의 옆으로 여러 개의 스툴이 놓여있습니다. 남자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앉아있고, 그들의 앞 바 너머로 식당 종업원이 몸을 수그린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자는 짙은 화장을 하고 붉은색 옷을 입고 오른손에 뭔가를 들고 바라봅니다. 식당 내부의 조명은 매우 환하게 유리 밖 거리까지 뻗어있습니다. 이 건물의 뒤, 길 건너편으로 어두운 실내가 쇼윈도를 통해 보이는 건물이 왼편으로 길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짙은 녹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림입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작이라 할만한 작품 'Nighthawks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입니다. 왼편으로 길게 자리 잡은 건물은 호퍼의 다른 그림 'Early Sunday Morning'의 건물을 연상하게 합니다.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전혀 유화로 그린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유화로 그린 그림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덧칠을 해서 여러 가지 색이 섞여 있는 듯한 인상파 화가들이 그린 그림의 느낌이었는데,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그런 유화와는 다른 아크릴의 느낌이 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림의 구도나 사실적인 묘사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도 색이 주는 강렬함이 있습니다.
위에서 묘사한 그림에서와 같이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1882년 뉴욕 나이액에서 태어나 New York School of Illustrating에서 공부하고 1년 후 New York School of Art에서 1900년부터 1906년까지 일러스트를 공부했는데, 중간에 순수미술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학업을 마친 후 잠시 일러스트레이터로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1906년부터 1910년 사이 세 차례의 파리 방문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가 방문했던 시기의 파리는 서구사회에서 예술의 중심지였습니다. 그곳에서 호퍼는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색을 묘사하는 인상파에 매료되었습니다. 인상파 화가인 모네, 세잔, 고흐, 쇠라 등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유화뿐만 아니라 판화작업에도 몰두했습니다. 호퍼는 스케치북을 들고 도시를 돌아다니며 관찰한 내용을 그림으로 기록했습니다. 사람과 건물, 풍경 등을 스케치한 많은 작품들이 그가 얼마나 사실주의에 기반한 그림을 그렸는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전시회에서 보았던 그의 노트에는 작업할 그림의 내용이 적혀있거나, 구도 등이 간단하게 그려져 있기도 하더군요.
1924년 뉴욕스쿨오브아트의 동기이며 화가인 조세핀 베르스틸 니비슨과 결혼을 합니다. 일명 조라고 불리는 그녀는 호퍼의 모델이었을 뿐만 아니라 매니지먼트 역할까지 담당했습니다. 호퍼가 다양한 예술활동에 참여하도록 했으며, 수채화를 그리도록 권유하고 그가 디자인한 모든 작품 및 전시, 판매되는 작품까지도 모두 기록해 두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호퍼의 그림에서 나오는 여성 대부분의 모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는 그녀의 일기에서 호퍼가 억압적이고 지배적인 남편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좌절감을 상세하게 기록하며 호퍼와의 폭력적인 싸움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호퍼의 그림은 마치 영화의 장면을 보는 느낌이 들게 하는 그림이 많습니다. 심지어 많은 영화에서 호퍼의 그림을 오마주 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작품 'Chop Suey'에서 식당 안 테이블을 마주하고 있는 두 여성을 영화 '캐롤'에서 두 주인공이 식당에서 마주하는 모습으로 오마주 했다고 합니다. 최근에 나온 영화 '룸 넥스트 도어'에서는 전체적으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연상하게 합니다. 영화의 원작인 '어떻게 지내요'에서 나오는 그림은 영국 귀부인을 그린 그림인데, 영화에서는 호퍼의 그림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로 대체됩니다. 룸 넥스트 도어의 두 주인공이 입고 나오는 옷이나 배경, 집의 색들이 호퍼를 떠올리게 합니다. 테라스에 있는 녹색의 선베드에 노란색 슈트를 입고 누워있는 마사의 모습은 호퍼의 그림을 재현하는 듯합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숲으로 둘러싸인 집의 모습 역시 호퍼가 집을 그린 다수의 작품 중 하나를 떠올리게 합니다.
에드워드 호퍼와 영화는 상당한 관계가 있는데요, 히치콕 감독이 영화 '사이코'에서 배경이 된 모텔을 호퍼의 '철로변 집'을 모델로 한 것처럼 영화감독들이 호퍼의 그림을 모델로 하기도 했지만, 호퍼 역시 영화를 그림의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작품 '뉴욕 극장'입니다. 그림을 바라보면, 왼편으로 스크린에서 영화가 상영 중이고 영화를 보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오른편에는 파란색 옷을 입은 금발의 여자가 벽에 기대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여자의 오른쪽에 붉은색 커튼 사이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 그림 안에서 이루어지는 스토리에 관심이 가게 합니다.
호퍼는 1965년까지 비엔날레 등 여러 전시회를 하고, 뉴욕과 케이프 코드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갑니다. 말기에는 비평가들에게 외면을 당하기도 하지만, 1967년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사망할 무렵에는 미국의 차세대 사실주의 작가들에게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술 전공자나 전문가가 아닌 시선으로 쓰는 글입니다. 단지 그림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좋아하는 그림이나 작가를 사견을 담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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