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만에 석굴암을 다녀왔습니다. 수학여행으로 방문했었던 고교 시절, 20대 초반 친구와, 결혼해서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때, 그리고 현재 이렇게 총 네 번의 석굴암 방문이 있었네요. 수학여행 때의 방문은 방문했다는 기억만 있을 뿐 석굴암 자체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합니다.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20대에 방문했었던 기억입니다. 유리 벽 너머로 보이던 본존불을 바라보며 가슴이 떨리는 느낌을 받았는데,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번 방문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 옛날의 떨림을 다시 떠올려 봤습니다.
아이들과 갔을 때도 꽤 많이 걸었던 것 같았는데, 지금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십 분 정도만 걸어가면 볼 수가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받았던 입장료도 없이 무료로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입구 쪽으로 계단을 오르면 좌측에 커다란 종이 있는데, 타종 한 번에 천 원씩 받고 있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치는 웅장한 종소리를 공짜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입구를 지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약간 위쪽으로 석굴암이 자리한 목조 건물이 보입니다.
목조 암자의 입구로 들어가면 좌측에 유리 벽 너머로 석굴암 내부와 본존불이 보입니다. 그 오랜 세월 여전히 장엄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조각된 본존불이 있습니다. 합장하고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동영상이나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눈으로만 열심히 담았습니다. 옛날처럼은 아니지만 가슴의 두근거림이 느껴지더군요. 1976년 유리 벽이 설치된 이후로 부처님 오신 날 하루만 석굴 내부로 들어가 본존불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석굴암은 통일신라 때 김대성에 의해 경덕왕 10년에 창건해서 혜공왕 10년에 완공이 되었습니다.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당시에는 석불사로 불렸다고 합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석굴은 장방형의 전실과 원형의 주실로 나누어져 있고, 사천왕상이 조각된 통로가 전실과 주실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전실의 좌우 벽에는 팔부신장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전실에서 통로로 꺾어지는 입구에는 금강역사가, 원형의 주실 벽에는 천부상, 보살상, 십대제자상이 있습니다. 주실 중심부에서 조금 뒤로 본존불이 위치하고, 본존불 뒤로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있습니다. 십대제자상 위에는 움푹 들어간 감실이 있는데, 안에 작은 조각상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10개의 조각상이었는데 일제에 의해 사라져 지금은 8개만 존재한다고 합니다.
모든 조각상이 그러하지만, 본존불을 보고 있으면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섬세하게 조각된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석조 조각에 사용되는 무른돌이 아닌 단단한 화강암을 이처럼 조각했다는 것은 신비롭다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석굴암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보통 후광이라 일컫는 광배를 불상의 머리 뒤에 붙여서 조각하는데, 석굴암의 광배는 본존불의 뒷면 벽에 조각되어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위치가 달라 보인다고 합니다. 이는 원근법을 활용한 방법이라고 하네요.
이처럼 신비롭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지만, 많은 고난의 여정이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방치되다가 재발견된 이후로 조선 통감부는 석굴암을 해체해서 일본으로 옮기려 했지만 실패하고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실시합니다. 이때 습기를 조절하기 위해서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데, 시멘트에서 나오는 탄산가스 등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석굴을 훼손하게 됩니다. 그 후, 박정희 때에도 빠른 보수 공사를 위에 석굴의 위에 다시 콘크리트 돔을 설치합니다. 이것은 석굴 내부에 엄청난 습기가 생기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와전 개방형이 아니라 입구에 목조 건물을 세운 것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이후, 석굴을 밀폐하고 에어컨을 작동시켜 습기를 제거하는 방법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에어컨의 소음과 진동이 오랜 기간 이어질 경우 석굴암에 손상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 석굴암이 지어졌을 당시에는 밑으로 샘물이 흘렀다고 합니다. 그 샘물이 석굴 내부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주는 역할을 했었지만, 일제 강점기 때 보수 공사를 하면서 그 물을 다 빼내고 물길을 다른 곳으로 변경했습니다. 또한, 해체와 복원 공사를 하면서 사용되지 못한 석물들이 근처에 모여있는 걸 보면 보수와 복원 공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석굴암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불국사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신라 불교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예술 작품이자 불교 건축물로서 세계적으로 보존할 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보존 방식이 석굴암의 미래를 지켜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긴 하겠지만, 후대에 남겨질 문화유산을 위해 방법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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